
1편. 형사공탁, 뭐가 어떻게 바뀐 걸까
안녕하십니까. 법무법인 에스 임태호 변호사입니다.
성범죄 사건을 포함한 형사재판에서 “합의가 안 될 때 마지막으로 고민하는 수단” 중 하나가 형사공탁입니다. 최근 공탁법과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형사공탁과 관련된 규정들이 꽤 많이 손을 봤습니다. 실무에서는 이미 조금씩 적용이 시작되고 있고요.
먼저 형사공탁이 무엇인지 짚고, 이번 개정으로 형사공탁이 예전과 달라진 점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 형사공탁이란 무엇인가
형사공탁은 쉽게 말해 피해자에게 직접 합의금을 건네지 못하는 상황에서 법원 공탁소에 돈을 맡겨 두는 것입니다.
피해자가 연락을 받지 않거나, 합의를 완전히 거절하거나, 인적 사항을 알 수 없거나, 접근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한 사건들이 있습니다.
이때 피고인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재판을 받기에는 부담이 크기 때문에 “그래도 피해 회복 의사는 있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공탁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에는 여기서 현실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피해자 인적사항을 모르고서는 공탁 자체가 어려웠다는 점입니다.

2. 예전 형사공탁의 한계 – 인적사항 없으면 사실상 불가능
공탁법에 형사공탁 특례가 들어오기 전에는, 피해자 인적사항을 모르면 형사공탁 자체가 거의 막혀 있는 구조였습니다.
-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피해자 연락처나 주민등록번호를 이미 알고 있는 경우
- 또는 재판부에 “형사공탁을 위해 피해자 인적 사항 열람이 필요하다”고 신청해서 허가를 받은 경우
이런 예외적 상황이 아니면 공탁이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제도상으로는 “수령을 거절하는 피해자를 상대로도 돈을 맡겨 둘 수 있다”는 공탁의 취지와 달리, 현실에서는 피해자의 동의나 최소한의 협조가 있어야만 공탁이 가능한 셈이었습니다. 이런 구조가 여러 차례 비판을 받았고 그 결과로 공탁법 제5조의2 ‘형사공탁의 특례’가 들어오게 됩니다.
3. 공탁법 제5조의2 – 피해자 인적사항 없이도 공탁 가능
공탁법 제5조의2는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피해자 인적사항을 몰라도 형사공탁을 할 수 있게 하겠다.
이 조항에 따라 피고인은 이제 피해자의 이름이나 주민등록번호를 정확히 몰라도, 해당 형사사건이 계속 중인 법원과 사건번호, 공소장 등에 기재된 피해자 표시만으로 공탁을 할 수 있습니다.
즉 공탁서에는
- 사건이 진행 중인 법원
- 사건번호
- 사건명
- 공소장 등에 적힌 피해자 특정 표시
이 정도만 적어도 공탁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공탁 통지 방식입니다. 예전처럼 일일이 피해자에게 우편을 보내는 방식이 아니라, 공탁소에서 인터넷 홈페이지 등에 공고하는 방식으로 대체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피해자가 나중에 필요한 경우, 법원이나 검찰이 발급하는 증명서를 통해 본인임을 확인하고 공탁금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피해자 인적사항 비공개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공탁 자체는 막지 않겠다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한 것입니다.

4. 형사소송법 제294조의5 – 공탁이 있으면 법원은 피해자 의견을 듣는다
이번 개정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부분은 형사소송법 제294조의5입니다.
내용은 단순합니다.
피고인이 피해자 권리 회복을 위한 금전 공탁을 한 경우, 법원은 판결 선고 전에 피해자 등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다만 예외도 함께 규정하고 있습니다.
- 이미 사건 진행 중에 공탁에 대한 피해자 의사가 명확히 드러난 경우
- 피해자 의견 청취 때문에 재판이 지나치게 지연될 우려가 있는 경우
- 피해자 인적사항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 등
이런 때에는 예외적으로 의견 청취를 생략할 수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실무에서 의미 있는 지점은 형사공탁이 더 이상 “피해자와 완전히 무관한 양형 도구”로 쓰이기 어렵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피해자는
- 공탁을 원하지 않는다
- 처벌을 계속 원한다
- 공탁액이 너무 적어 받아들일 수 없다
이런 의견을 법원에 전달할 수 있고, 법원은 이를 양형 단계에서 함께 보게 됩니다.
또 규칙상 피해자의 공탁 관련 의견은 범죄사실 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도록 정해 두었습니다. 즉 공탁은 받지만 처벌은 원한다 같은 의견들이 오로지 양형 판단에서만 참고되도록 장치를 둔 것입니다.
5. 공탁법 제9조의2 – 공탁금 회수 제한, 이른바 ‘먹튀 공탁’ 방지
이번 개정에서 관심을 많이 받는 부분이 바로 공탁금 회수 제한입니다. 공탁법 제9조의2는 형사공탁을 해 놓고 나중에 상황을 보다가 슬그머니 회수해 가는 방식, 이른바 먹튀 공탁을 막기 위한 규정입니다.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 피고인이 형사사건 피해자 명의로 변제공탁을 한 경우: 원칙적으로는 임의 회수가 제한됩니다.
- 예외적으로 회수가 가능한 경우는
- 피해자가 공탁 회수에 동의하거나, 공탁물 수령 자체를 거절하겠다는 의사를 공탁소에 통보한 경우
- 해당 형사사건에서 무죄 판결이 확정되었거나 혐의없음·공소권 없음 등 불기소 처분이 난 경우(기소유예는 제외)
즉 피고인이 마음대로 일단 공탁해서 형을 줄이고 나중에 다시 찾아오겠다는 전략은 사실상 차단된 셈입니다. 실무에서는 애초 공탁을 할 때부터 이 돈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보고 결정해야 하는 구조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6. 정리
1편에서는 형사공탁의 기본 개념과 최근 법 개정 방향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이제는 피해자 인적사항을 몰라도 형사공탁이 가능합니다.
- 공탁이 이루어지면 법원은 피해자의 의견을 듣는 절차를 거치게 됩니다.
- 형사공탁을 했다면 무죄·혐의없음 등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탁금을 다시 돌려받기 어렵습니다.
다만 여기까지는 제도적 틀의 변화이고, 피고인 입장에서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그럼 실제 재판에서 형사공탁이 얼마나 도움 되느냐”
“피해자가 끝까지 합의를 거부해도 공탁을 하면 의미가 있느냐”
“어느 정도 금액을 공탁해야 실질적인 영향이 생기느냐”
이 부분은 2편에서 판례 경향과 실무 체감을 기준으로 조금 더 현실적으로 설명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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